점진적 변화지만 의미 있어

검찰 등 권력기관 개혁문제

딱하나로 정해진 기준 없어

활발하고 열린 논의가 중요

“부패는 삶의 모든 부분에 관여돼 있습니다(Corruption touches every aspect of life).”

오는 6월 2∼5일 서울에서 열리는 제19차 국제반부패회의(IACC) 준비 작업차 방한한 위겟 라벨르(81) IACC 의장은 “부패 척결을 위해서는 한 명이 의사결정을 독점하지 않고, 시민단체와 국민이 함께 참여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특히 라벨르 의장은 격년으로 열리는 올해 IACC 주제가 ‘진실·신뢰·투명성’이라면서 “각국이 국내에서 신뢰를 구축하고, 이를 통해 집단행동을 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부패와의 전쟁’에서 국제협력을 강조한 라벨르 의장은 “불행히도 부패는 늘 일어나지만, 최대한 예방하고 조기에 적발해 해결하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다만, 그는 한국의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일명 김영란법) 적용 대상 논란이나 사정기관인 검찰개혁 등에 대해서는 “한국은 열린 사회로,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 자리를 잡을지 결과를 살펴볼 수 있을 것”이라며 즉답을 피했다. 방한 기간에 문재인 대통령도 면담한 라벨르 의장과의 인터뷰는 지난 4일 정부서울청사 국민권익위원회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IACC가 국내에서는 여전히 생소한 조직인데, 활동 내용을 소개해달라.

“코피 아난 전 유엔 사무총장의 주도로 지난 2000년 7월 출범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에 대한 자발적 국제협약인 유엔 글로벌 콤팩트(UNGC)라는 게 있다. UNGC 9대 원칙에 노동·인권·환경 등이 있는데, 반부패는 안 들어가 있었다. 국제투명성기구(TI)가 유엔과 협력해 10번째 원칙으로 부패를 넣었다. 이후 유엔의 지속가능한 개발목표(SDGs)에도 16번째 목표로 ‘사회 정의’가 들어가 있는데, 반부패 등과 같은 사회정의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으면 환경·교육 등 다른 분야의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셈이다.”

―아프리카 저개발국가 등에 많은 원조가 투입되지만 여전히 빈곤 탈피를 하지 못하고 있다. 부패가 핵심적 원인이라는 지적들도 있다.

“빈곤 문제는 단순히 국가의 문제가 아니다. 국제사회에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일단은 뇌물이 주요 원인이다. 또 자금이 공공재정으로 들어가 대국민 서비스로 제공돼야 하는데, 이게 유출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국제적으로도 이 문제는 매우 중요한데, 이들 자금에 대한 세탁 등이 국제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이다. 마약 거래나 인신매매, 탈세 등도 만연해 있다. 탈세의 경우 상당수 국가가 안고 있는 문제지만, 빈국에 더 영향을 많이 준다.”

―해법은 무엇인가.

“국제사회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다양한 수단도 존재한다. 가장 핵심적 수단은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유럽연합(EU) 등 국제회의체들로, 개별 국가들로 하여금 반부패를 위한 국제협력을 약속하게 할 수 있다. 현재 많은 국가에서 기업의 실소유주 등록을 의무화하라는 압력이 커지고 있는 게 대표적 사례다.”

―오는 6월 서울에서 열리는 IACC도 이런 협력의 일환인가.

“이번 회의는 각국 정부와 기업, 시민단체, 학계 등이 한자리에 모여 부패 문제를 논의할 수 있는 장이다. 향후 나아갈 방향과 혁신적 방안을 공유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특정 국가의 솔루션(해결방안)을 공유하고, 이게 어느 국가와 기업에 효과가 있는지 등을 논의할 수 있다. 이런 노력은 각국에서 투명하고 민주적인 기반을 만드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한국은 2003년에 이어 이번에 다시 회의를 주최하게 됐는데.

“위원회는 주최 희망국을 상대로 어떤 성과를 이뤘으며 어떤 국제적 마인드를 가졌는지, 여행은 자유로운지 등을 평가·검토한다. 무엇보다도 법과 정책·규제, 시스템이 부패를 얼마나 잘 예방하며 얼마나 이를 잘 적발해 적절히 처벌하는지를 본다. 한국의 반부패기관인 국민권익위원회(ACRC)는 이를 상당히 잘했다고 평가됐다. 한국에는 반부패 관련 인프라도 잘 갖춰져 있다.”

―올해 회의 주제는.

“올해 주제는 ‘진실·신뢰·투명성’이다. 이번 회의를 통해 과거뿐 아니라 미래를 더 나은 세상으로 만들려는 의지가 강력하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한다. 가장 중요한 부분은 신뢰 회복인데, 이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각국이 국내에서 신뢰를 구축하는 게 중요하다. 참석자들이 더러운 돈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 집단적 행동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고 싶다. 부패를 해결하기 위해선 정부뿐 아니라 시민단체와 국민이 함께 다 같이 행동해야 한다. 한 명이 의사결정을 독점하는 게 아니라 다 같이 참여해야 한다.”

―지난해 TI의 부패인식지수(CPI) 조사결과에서 한국이 전년보다 6단계 상승한 39위로 나타났다.

“굉장히 중요한 숫자다. CPI는 13개의 다양한 설문조사에 기초한 종합지수다. 평가에 시간도 많이 걸리며, 단계 변화가 나타나는 데도 시간이 많이 걸린다. 한국의 변화 추이는 점진적이었는데, 최근 나온 점수는 매우 눈에 띈다. 한국의 권익위는 세계에서 손에 꼽히는 기관이다.”

―하지만 한국 내에서는 연이은 부패 스캔들이 터져 나오면서 한국인들은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

“불행히도 부패는 어디서든, 언제든 늘 일어난다. 하지만 최대한 예방하고 초기에 적발해 해결하는 게 중요하다. 한국의 흥미로운 점은 누구도 법 위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법이 집행되고 시스템이 작동하는 게 중요하며, 부패를 저질러도 곧 적발된다는 걸 알게 하는 게 중요하다. 탈세나 뇌물·돈세탁 사례를 보면 그 원인으로 한 집단이 배를 채울 수 있는 시스템과 네트워크가 존재하기 때문인데, 국제협력도 중요하지만 일단 국내법이나 시스템이 잘 작동해야 한다.”

―한국은 2016년 청탁금지법을 시행하고 나서 사립학교 교원 등 일부 민간인이 대상에 포함돼 논란이 됐었는데.

“모든 문제에는 찬반이 있다. 중요한 것은 한국은 열린 사회라는 것이며,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 자리를 잡을지 결과를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불행히도 딱 하나로 정해진 기준은 없다.”

―부패 사범에 대한 적절한 처벌이 중요할 텐데, 권력기관이 부패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현재 한국에서 검찰개혁이 이뤄지고 있는데, 적절한 권력기관 개혁은 어떤 것인가.

“검찰은 국내법에 근거해 권한을 행사한다. 권한은 법·규제로 견제되고, 제한된다. 지금 질문은 한국 국내 문제인데,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뭐가 핵심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출처: 문화일보/ 신보영·김영주 기자/ 2020년 2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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